2007년 6월 28일, 윌트셔의 에이브버리 (Avebury) 근처의 웨스트 케넷 롱 배로우 (West Kennett Long Barrow)에서 발견된 크롭서클 (미스터리 서클) 입니다.

(출처: Temporary Temples, by Steve Alexander)
원근법 크롭서클
이 크롭서클은 르네상스의 발명 중 하나인 원근법 (Perspective)을 활용하였습니다. 원근법이란 3차원 형상을 2차원 평면 위에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회화적 기법입니다. 원근법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림이 그려진 벽 뒤로 크게 공간이 뚫려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하지요. 원근법을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습니다. 이 벽화는 완벽한 원근법 활용을 통해 실제 건물의 양쪽 벽이 연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연출된 천재적인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출처: Flicker by Dimitris Kamaras)
웨스트 케넷에서 발견된 이 크롭서클은 긴 복도를 표현했으며 복도의 끝이 소실점이 되는 1점투시 원근법을 사용했습니다. 좌 우로 세 개씩 문이 배열되어 있고 바라보는 사람과의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그 크기가 줄어듭니다. 바닥은 체크무늬 타일로, 천장은 들보로 이뤄졌는데, 그 크기와 방향에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출처: Temporary Temples, by Steve Alexander)
그렇다면 원근법을 활용한 이 크롭서클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양쪽에 문들이 줄지어 있는 긴 복도... 어떻게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바닥의 타일 패턴입니다. 약간 장난스럽기도 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체크무늬 타일이네요. 저는 '복도 (Corridor)', '문 (Door)' 등의 키워드를 이용해 저 크롭서클과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를 검색하다 아래와 같은 이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 (출처: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988), Illustrated by Anthony Brown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그림은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에 사용된 삽화입니다. 이 삽화를 그린 사람은 동화 삽화로 유명한 앤써니 브라운 (Anthony Browne) 입니다. 복도의 양쪽으로 늘어선 문들과 바닥의 체크무늬 타일, 그리고 천장의 들보들. 크롭서클의 형상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 복도는 이야기 첫 장에 등장합니다. 흰토끼를 따라 토끼굴 아래로 추락한 앨리스는 위 그림처럼 똑같은 문이 양쪽으로 늘어선 긴 복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문들은 모두 잠겨 있었습니다. 다리가 셋 달린 유리 탁자 위에서 황금열쇠를 발견한 앨리스는 이를 이용해 커튼 뒤에 숨겨져 있던 작은 문을 열게 되고, 문 바깥쪽으로 난생 처음보는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 것을 알게 되죠. 즉 이 복도는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것입니다.
활짝 열린 문들
이 크롭서클은 우리를 이상한 나라, 혹은 원더랜드로 초대하는 입구를 그려놓은 것이었습니다. 원작에서는 모든 문이 잠겨 있고 오직 황금열쇠를 이용해야만 이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이 크롭서클의 문들은 모두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원더랜드로 들어가기 위해 황금열쇠도, 몸을 키우거나 줄이는 물약도 케이크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 안쪽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용기만 있으면 원더랜드로 한발짝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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