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지구 종말론
최근 수십년간 종말론이 전 세계를 휩쓴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공포의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예언했던 1999년이었습니다. 지구종말론을 담은 두툼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더불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나네요. 노스트라다무스가 종말을 예언했다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9의 해, 일곱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키려고.
그 전후의 기간에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려 하리라.
지구종말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지금 다시 저 시를 보니 오히려 왜 저 시가 지구의 종말을 예언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단지 공포의 대왕이란 존재가 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킨다는 내용일 뿐이잖아요? 공포의 대왕이 되살아난 앙골모아 대왕과 반드시 세계를 멸망시키리라는 법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유행했던 해석에 따르면 앙골모아 대왕은 전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몽골족을 뜻하는 것이었고,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지배란 전 세계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발음의 비슷함으로 마르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지칭하는 것이다라는 독창적인 해석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구 종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999년 7월경에 천체에도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고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1999년 7월경의 행성 배열에 무언가 특별한 현상이 있을것이란 기대로 천문현상 조사를 시도했지만 기대했던 특이한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언보다 한 달 정도 지난 1999년 8월 경 태양계의 행성들이 십자가 형상으로 배열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그랜드 크로스'라고 부르며 사실 노스트라다무스 시대의 달력이 현대 달력과 한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 지구 종말의 날은 그랜드 크로스가 발생하는 1999년 8월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2012년 지구 종말론
두 번째 종말론은 2012년 12월 21일을 지목했습니다. 이 종말론의 근거는 '마야 달력' 이었습니다. 마야인들은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달력 체계를 사용했는데, 이 달력이 끝나는 날인 2012년 12월 21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끝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인터넷을 떠돌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의 주역에도 이 날이 예언되어 있고, 주식시장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던 웹봇이란 프로그램도 이 날의 분석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급기야 헐리우드에서는 <2012> 라는 세계멸망을 주제로 한 재난 영화를 만들어내어 마야 달력으로부터 발생한 해프닝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져갑니다.
마야 달력으로 대표되는 중앙아메리카 토착 문명들은 실제로 독특한 달력 체계를 사용했습니다. 이 달력 체계는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중앙아메리카에 존재했던 올멕 문명으로부터 기원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달력 체계는 한 날짜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단위를 필요로 합니다. 각 단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20일 = 1 우이날
18 우이날 = 1 툰
20 툰 = 1 카툰
20 카툰 = 1 박툰
예를 들어 마야 달력으로 8.3.2.10.15 란 날짜는 '8박툰 3카툰 2툰 10우이날 15일' 이 됩니다. 그러나 이 날이 실제 가리키는 날짜를 알기 위해서는 언제가 시작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야족의 역사와 신화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서인 포폴 부 (Popol Vuh)에 따르면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현재가 네 번째 세계 라고 합니다. 우주를 창조한 신은 세 번의 실패 끝에 성공적인 네 번째의 세계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여기에 우리 인간들을 살도록 했다는 거죠. 이번 세계 이전의 세 번째 세계는 13 박툰 동안 지속되었다고 하고 이는 5125년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 세계가 끝나고 네 번째가 시작된 날이 기원전 3114년 8월 11일이고 마야력은 이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네 번째 세계는 이 날짜로부터 13 박툰동안 지속된다고 하며 13.0.0.0.0에 해당하는 날이 바로 2012년 12월 21일이 됩니다.
어떻게 지구가 멸망하는지에 대한 가설도 다양했습니다. 태양 폭풍설, 지구 자기장 역전설, 블랙홀 흡수설, '니비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행성 X와의 충돌설 등이 그 예입니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2012년 12월 21일을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영혼에 긍정적인 큰 변화가 발생하는 날로 이해했습니다. 1999년에 그랬던 것처럼 천체에 어떤 특이한 점이 없는지에 대한 조사도 시도되었습니다.
태양계 크롭서클
2008년 7월 15일, 윌트셔의 에이브버리 메이너 (Avebury Manor)에서 발견된 크롭서클입니다.

태양계 크롭서클 (출처: Temporary Temples, by Steve Alexander)
의심할 여지없는 태양계 형상입니다. 수성부터 화성까지의 내행성계와 목성부터 해왕성까지의 외행성계가 그 위치와 선의 굵기로 구별되어 그려져 있고 지금은 행성이 아닌 명왕성의 궤도도 그려져 있습니다. 태양과 행성들의 궤도와 그 위치.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성들의 배열에도 그다지 특이한 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크롭서클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궤도와 행성들의 위치가 나타내는 날이 언제인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2012년 12월 21일이었습니다.

크롭서클 이미지 (출처: cropcirclecenter) 와 2012년 12월 21일의 태양계 행성 분포 (출처: The planets today)
지구 종말론 크롭서클?
이 크롭서클이 발견된 2008년에는 마야력에 따른 지구 종말론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때입니다. 마침 그 즈음에 발견된 몇몇 크롭서클들은 마야나 아즈텍 문명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던 터라, 이 크롭서클의 발견은 당연히 지구 종말론과 연관되어 해석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크롭서클은 전 세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리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크롭서클 신봉자들 중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그날 새로운 영혼의 도약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한 가지가 약간 찜찜합니다. 세계가 멸망하는 그 날, 혹은 지구 생명체의 의식이 깨어나는 그날, 태양계의 움직임은 너무나 평온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1999년 8월처럼 그랜드 크로스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멋진 기하학적 형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태양계의 하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죠.

평범한 태양계의 하루 (출처: Temporary Temples, by Steve Alexander)
레드 콜리 (Red Collie)라는 필명을 가진 호래스 드루 (Horace Drew) 박사는 이 크롭서클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합니다. 내행성들의 위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호래스 드루 박사는, 이 크롭서클이 나타내는 날은 2012년 12월 21일이라기보다 12월 23일이나 24일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12월 24일? 이 크롭서클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는 녀석이란 말인가요? 아니면 1999년에 그랬던 것처럼 마야력과 현재 달력 사이에 2-3일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는 걸까요? 왜 모두가 기대하는 2012년 12월 21일이 아니라 별 의미 없는 23일이나 24일이 크롭서클로 나타난 걸까요?

2012년 12월 21일과 12월 24일의 내행성 분포 (출처: The planets today)
지구 종말은 없다
제 생각으로 서클메이커들은 '2012년 12월 24일은 이렇게 평화롭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즉 2012년 12월 21일에 전 지구적인 어마어마한 일은 발생하지 않고 그 날을 무사히 지난 태양계는 아무일 없이 평소와 같이 돌아간다는 메세지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경험한 미래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거죠. 만약 그 날 이전의 사람이라면 '이 크롭서클은 뭔가 실수 아냐?'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을 거 같네요. 지구 종말을 부정하는 예언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평온한 날의 태양계 크롭서클, 좀 세련된 방법이라고 느껴지지 않나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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